나뭇가지가 뻗어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골목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부산의 감천문화마을과 통영 동피랑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오래된 마을이지만 아직도 골목길부터 집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는 것과 벽화를 비롯한 예술작품으로 삭막함을 지우고 자기 마을의 특색을 더하여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작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항구도시 중 하나인 목포, 이곳에는 저 두 곳만큼은 아니어도 오래된 골목을 보존하면서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마을이 있다. 바로 서산동의 시화 골목이다.
유달산의 비탈진 언덕 아래 자리 잡은 이 골목은 일본 영사관을 필두로 바둑판 같이 계획 도시로 꾸며진 일본인들의 거주지와는 다르게 조성되었다. 언덕 위에 복잡하게 골목길 주변으로 집들이 모여서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고, 이는 지금도 잘 유지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영화 <1987>의 촬영을 서산동에서 진행했던 것을 계기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연희네슈퍼’가 목포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한 번씩 둘러보는 레트로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산동 시화 골목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 한 가지
이곳을 찾아가는 길은 그렇게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자가용을 몰지 않고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온 경우에는 목포터미널이든 목포역이든 상관없이, 버스정류장에서 목포 시내버스 1번을 타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목포수협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연희네슈퍼를 비롯한 골목길이 당신의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단, 집으로 돌아갈 때는 목포여객선터미널 방향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목포수협 수산물 공판장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힘겨웠던 주민들의 삶이 드러나는 애환의 골목
서산동 시화 골목은 단순히 시와 그림으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만은 아니다. 1897년 개항한 목포는 일제강점기 당시 쌀뿐만 아니라 전남 각지에서 생산한 면화를 일본으로 수탈하는 거점으로 변모했는데, 이 당시 서산동에는 면실유를 만드는 공장이 들어섰다.
항구는 농산물 수탈의 장이 되었고, 유달산의 일본 영사관을 비롯한 근대 건물들이 들어선 거리는 활기를 띠었으나, 정작 이곳 사람들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공장에서 면실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에 쌀겨를 섞은 일명 ‘똥비누’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을 정도라니,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짐작이 간다.
그렇게 수십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해왔던 서산동인 만큼, 좁은 골목길과 보리타작을 하던 ‘보리마당’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몇 년 전, 목포시는 보리마당 골목길을 비롯한 시화 골목을 시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복잡한 형태의 골목길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그 가치가 높기도 하지만, 그런 골목길이 바다와 맞닿아있는 모습이야말로 항구도시인 목포에게 어울리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해안가에서 바로 좁고 가파른 골목길로 이어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골목골목마다 붙어있는 시와 그림을 통해 이곳의 진가가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목포대에서 진행했던 인문도시사업의 일환으로 이 곳에서 열린 시화전이 바로 지금의 시화 골목이 있게 만든 출발점이었다. 목포의 시인과 화가들은 서산동의 주민들과 소통한 것은 물론, 작품도 함께 만들어가면서 이 곳을 특색 있는 명소로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지자체나 정부가 세금을 들여서 인위적으로 만든 것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더구나 골목 입구에 있는 ‘연희네슈퍼’는 영화 <1987>의 흥행으로 인해 색다른 곳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민들의 애환이 담긴 골목이 이제는 특색 있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도시재생사업이 진행 중인 서산동 시화 골목
필자가 서산동의 시화 골목을 다녀갔을 무렵인 지난 27일에는 보리마당을 비롯한 일부 구역에서 집이 철거되는 등,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 올 법한 보리마당까지도 펜스가 쳐진 것을 보고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보다 더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도시재생사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지금도 이 골목에는 오랜 세월 동안 이 마을에서 살아오신 주민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또한 몇몇 예술인을 비롯한 사람들도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새롭게 다지고 있다. 시화전을 계기로 마을이 활성화되며 상전벽해를 맞이한 것이다. 도시재생을 통해 낡고 좁은 골목의 불편함을 벗어나 레트로 여행의 명소이자 사람 사는 공간으로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시화 골목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isak4703/40)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